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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분 분량2026년 4월 19일

취소되지 않는 예약문자 · 1

취소되지 않는 예약문자, 문 닫힌 천문대의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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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치른 집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사람이 많이 다녀간 자리엔 늘 흔적이 남는다. 국그릇 바닥에 엉겨 붙은 미역국 기름막, 현관 한쪽에 몰린 검은 슬리퍼, 향 냄새가 눅진하게 밴 커튼. 그런데 막상 소리가 빠져나간 뒤의 집은 그런 흔적보다 더 가벼웠다. 하루 전까지 거실을 가득 채우던 위로와 한숨과 빈말이 한꺼번에 증발하고 나니, 해인은 자기 발소리가 집 안에서 너무 크게 울리는 것부터 견디기 어려웠다.

해인은 도윤 방 앞에 쪼그려 앉아 상자를 접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온 뒤부터 같은 동작만 반복했다. 접고, 넣고, 닫고, 다시 꺼내는 일. 버려도 되는 것과 버리면 안 되는 것의 경계가 자꾸 무너졌다. 고등학교 학생증, 편의점 영수증, 낡은 이어폰, 별자리 스티커가 붙은 텀블러. 손에 잡히는 건 다 사소했는데, 그래서 더 함부로 버릴 수 없었다.

휴대폰이 울린 건 그때였다.

짧고 또렷한 알림음 하나.

해인은 무심코 화면을 켰다가 그대로 굳었다.

`[해무천문대] 00:40 심야 관측 예약이 확정되었습니다. 예약자: 윤도윤님`

처음엔 스팸 문자라고 생각했다. 동명이인이겠지 싶었다. 장례를 막 치른 사람은 세상 모든 우연을 불길한 쪽으로 엮는다고 누가 말했었다. 그런데도 손끝이 식었다. 화면 아래엔 예약 번호와 이용 안내가 붙어 있었다.

`입장 확인은 매표소 무인 발권기 또는 현장 음성안내를 이용해 주세요.`

현장 음성안내.

해인은 그 문장을 한참 내려다봤다.

해무천문대는 작년 여름 태풍 이후로 운영이 중단된 곳이었다. 절벽 끝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가야 나오는 낡은 천문대. 뉴스에도 몇 번 나왔고, 시청 홈페이지에도 폐쇄 안내가 떠 있었다. 도윤은 어릴 때 별 보는 걸 좋아했지만, 이상하게 그 천문대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을 굳혔다. 한 번은 친구들이 야간 관측 보러 가자고 했는데, 도윤은 보기 드물게 단호하게 싫다고 했다.

`거긴 그냥 가지 마.`

그때 왜냐고 물었더니 별것 아니라는 얼굴로 말을 돌렸었다.

해인은 다시 문자를 열었다. 예약 시각은 오늘 밤 00:40. 장례를 마친 다음 날 밤이었다. 예약자 이름은 분명 윤도윤. 죽은 지 이틀 된 동생 이름. 누가 장난을 친다고 하기엔 너무 늦고, 너무 정확했다.

그 순간 도윤 휴대폰 메모장이 떠올랐다.

장례식장 빈 복도에서 잠깐 확인한 메모. `늦게 와도 예약은 남아.` 그 뒤는 저장되지 않은 채 끊겨 있었다. 그땐 정신이 없어서 무슨 뜻인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화면에 뜬 예약 문자와 맞물리자, 목 안쪽이 서늘하게 조여 왔다.

해인은 즉시 통신사 앱을 켰다가 닫았다. 예약 문자 하나쯤 해킹이나 오발송이라고 설명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문자가 하필 오늘, 하필 도윤 이름으로, 하필 폐쇄된 천문대에서 왔다는 사실은 설명되지 않았다.

거실 벽시계가 오후 세 시 십육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출발해도 밤이 되기 전까지는 한참 남는다. 그런데도 해인은 곧장 외투를 집어 들었다. 기다릴수록 더 못 갈 것 같았다. 해가 지고, 집이 더 조용해지고, 장례의 피로가 더 진하게 내려앉으면 결국 이 문자를 모른 척하고 싶어질 게 분명했다.

현관문을 나서기 전, 해인은 잠깐 도윤 방을 돌아봤다. 책상 위엔 아직도 반쯤 펼쳐진 천문 잡지가 놓여 있었다. 도윤은 늘 사소한 걸 끝까지 치워 놓는 편이었는데, 그 한 권만 유난히 덜 정리된 채 남아 있었다.

`나 갔다 올게.`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한마디를 남기고 문을 닫았다.

해무천문대까지 가는 길은 도시가 끝나는 순서를 눈으로 보는 일 같았다. 버스 창밖으로 프랜차이즈 간판이 줄어들고, 원룸과 상가가 듬성듬성 끊기고, 나중엔 해안도로와 낮은 방파제, 낡은 횟집 간판만 남았다. 오후 내내 비가 오다 그친 뒤라 바다는 잿빛이었다. 젖은 도로 표면 위로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종점에 가까워질수록 승객도 하나둘 줄었다. 마지막엔 해인 혼자였다.

기사조차 천문대 정류장 이름을 부를 때 짧게 해인을 돌아봤다.

`거기 지금 문 닫았는데요.`

해인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류장에 내려 축축한 바람을 맞는 순간부터 자신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 다시 설명할 수 없게 됐다. 장례 다음 날, 죽은 동생 이름으로 온 예약 문자 하나 때문에 폐쇄된 천문대까지 온 사람. 입 밖으로 꺼내면 미친 소리처럼 들릴 게 분명했다.

천문대까지는 경사길을 따라 십오 분쯤 걸어 올라가야 했다. 가로등은 두 개 중 하나씩 죽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젖은 솔잎과 염분 냄새가 번갈아 올라왔다. 오른편으론 바다가 검은 판처럼 펼쳐져 있었고, 왼편으론 관리가 끊긴 화단과 깨진 안내 표지판이 이어졌다.

해무천문대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땐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정문 셔터는 내려가 있었고, `시설 점검으로 인한 임시 폐쇄` 현수막이 비에 젖어 모서리부터 말려 있었다. 그런데 매표소 쪽은 이상할 만큼 환했다. 불이 켜진 건 아니었다. 무인 발권기 화면만 유난히 살아 있었다. 주변이 어두워서 그 희미한 백색광이 더 떠 보였다.

해인은 천천히 발권기 앞으로 갔다.

화면엔 기본 대기 화면이 아니라 예약 조회 창이 떠 있었다. 누가 방금 만져놓은 것처럼. 상단엔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작은 글씨로 `예약 번호 또는 성함 입력`이 적혀 있었다.

해인은 손을 내밀었다가 멈췄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이름을 누르는 순간 무언가가 진짜가 될 것 같았다. 그래도 결국 화면 키패드를 눌렀다.

윤. 도. 윤.

한 글자씩 입력할 때마다 화면이 짧게 번쩍였다. 마지막 글자를 누르자 대기창이 꺼지고 예약 정보가 떴다.

`예약자: 윤도윤`
`시간: 00:40`
`구역: 제2 관측실`
`확인 상태: 음성안내 대기`

해인은 숨을 들이마신 채 화면을 봤다.

취소되지 않은 예약. 현장 음성안내 대기. 동생 이름. 이건 누군가 수동으로 남겨두지 않고서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때 매표소 옆 오래된 안내 전화함에서 잡음이 튀었다.

지지직.

해인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투명 아크릴 덮개 안에 걸려 있는 회색 수화기가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 때문인지, 내부 스피커 때문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전화함 아래엔 `운영 시간 외 안내`라고 적힌 바랜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또 한 번, 짧은 전자음.

지지직.

해인은 천천히 덮개를 열고 수화기를 들었다.

처음엔 바람 소리만 들렸다. 마이크가 먼지 먹은 것 같은 거친 숨소리. 그러다 익숙한 목소리가, 너무 익숙해서 도리어 믿기 어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해인은 손에서 수화기를 놓칠 뻔했다.

녹음된 음성이었다. 짧게 끊어지고, 뒤에 공백이 남는 방식. 그런데도 틀림없이 도윤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되감던 그 목소리. 생전엔 늘 조금 빨랐던 말끝. 웃을 때마다 문장 끝이 살짝 들리던 버릇.

`이거 듣고 있으면, 누나 진짜 왔네.`

해인의 턱이 굳었다.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았지만, 녹음 상대는 당연히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미안. 장난 같지. 근데 나도 다른 방법이 없었어. 여기서는 오래 서 있지 말고, 매표소 아래 오른쪽 패널부터 봐. 손으로 밀면 열려.`

짧은 정적.

`그리고 누나, 오늘은 별 보러 온 거 아니야. 그건 알지.`

해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화를 내고 싶었다. 죽고 나서 이런 식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면 어떡하냐고,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혼자 준비해놓고 갔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런데 도윤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런 감정들이 죄다 한꺼번에 무너졌다. 화보다 먼저 온 건 안도였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는데, 남겨진 목소리는 이상하게 살아 있는 온도에 가까웠다.

녹음은 다시 이어졌다.

`패널 안에 토큰 하나랑 영수증 있어. 토큰은 버리지 마. 영수증이 더 중요해. 시간이 없으면 일단 7번부터 가.`

잡음이 끼었다.

`누나 혼자 오게 해서 미안해. 근데 다른 사람보다 누나가 먼저 알아야 했어.`

그 뒤엔 짧은 전자음 하나가 울리고 완전히 정적이 내려앉았다.

해인은 수화기를 들고 한동안 서 있었다. 바닷바람이 발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멀리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히는 소리가 늦게 들어왔다. 그 모든 소음이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는데, 정작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도윤은 정말로 이걸 준비해 둔 거였다.

해인은 수화기를 제자리에 걸고, 녹음에서 말한 매표소 아래 패널 쪽으로 몸을 숙였다. 금속 프레임 오른쪽 하단을 손으로 밀어보니 고정 나사가 풀린 틈이 있었다. 세게 누르자 얇은 판이 툭 열렸다.

안쪽엔 손바닥만 한 금속 토큰 하나와 구겨진 영수증이 들어 있었다.

토큰 앞면엔 `HM-2`라고 새겨져 있었고, 뒷면엔 천문대 로고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해인은 그보다 영수증부터 먼저 펼쳤다.

`항구역 보관함 7`
`보관 만료 05:10`
`수령 코드 확인 필수`

시간을 본 순간 해인은 휴대폰 화면을 켰다.

오전 4시 21분.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때 다시 문자 알림이 울렸다.

`[해무천문대] 예약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확인 지점은 해가 뜨기 전에 종료됩니다.`

이번엔 예약 번호 아래에 짧은 숫자도 하나 더 붙어 있었다.

`07-143`

수령 코드였다.

해인은 영수증과 토큰을 동시에 움켜쥐었다. 손 안에서 금속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천문대는 폐쇄돼 있었고, 도윤은 이미 죽었고, 그런데도 예약 체인은 정확히 다음 장소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교했고,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하기엔 도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

해인은 마지막으로 발권기 화면을 돌아봤다. 방금까지 떠 있던 예약 조회 창은 사라지고, 기본 대기 화면으로 돌아가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게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해인은 코트 주머니에 영수증을 넣고 경사길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람 때문에 눈이 시렸고, 젖은 도로는 미끄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멈출 수 없었다. 도윤이 왜 이런 예약 체인을 남겼는지는 아직 몰랐다. 다만 분명한 건, 이건 감정적인 작별 인사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항구역 7번 보관함.
수령 마감 05:10.
그리고 `오늘은 별 보러 온 거 아니야`라는 말.

도윤이 죽기 전에 무언가를 봤고, 그걸 누나에게 넘기려 했다는 뜻이었다.

정류장 쪽 불빛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을 때, 해인은 자신이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얼굴이 젖어 있었지만 빗물인지 눈물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버스가 오기엔 늦었고, 택시를 부르기엔 신호가 약했다. 해인은 도로 끝으로 뛰어나가 손을 들었다. 한참 만에 지나가던 낡은 개인택시가 속도를 줄였다.

문을 열고 타자마자 기사가 물었다.

`어디까지 갑니까?`

해인은 거친 숨을 삼키며 대답했다.

`항구역이요. 빨리요.`

택시가 출발한 뒤에도 휴대폰 화면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방금 온 문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같은 문장인데 읽을 때마다 의미가 달라졌다. 예약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도윤이 남긴 자동 체인인지, 누군가 그걸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인지, 아니면 그 둘이 이미 뒤섞여 버린 건지.

택시 창밖으로 희미한 새벽빛이 바다 위에 번지고 있었다.

해인은 주머니 안 영수증 모서리를 손끝으로 다시 확인했다.

`항구역 보관함 7 / 수령 마감 05:10`

도윤이 죽기 전 마지막 이동 기록과 거의 같은 시간이 머릿속을 스쳤다. 장례식장에 오기 전, 해인이 경찰에게 들은 대략적인 발견 시각. 숫자들이 갑자기 하나의 동선처럼 맞물렸다.

도윤은 죽기 직전까지 이 체인을 완성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이 아직, 해 뜨기 전의 역 어디엔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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