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납되지 않는 우산 · 3화
반납되지 않는 우산, 새벽 플랫폼의 반납함
준이 구조했던 아이를 찾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분실물 보관실 장부 한쪽 구석에 작은 메모가 남아 있었다. `보호자 연락 완료 / 우산 전달 요청 거절 / 역 보관 유지.` 날짜는 준이 사라진 바로 다음 날이었다. 나연은 역무 기록을 뒤지고, 오래된 지역 기사까지 찾아본 끝에 그날 침수 통로에서 살아 나왔던 아이의 이름을 알아냈다.
지금은 스무 살이 넘은 청년이었다. 이름은 선재였다.
선재는 나연이 붉은 우산을 보여 주자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커피잔을 쥔 손끝이 눈에 띄게 떨렸다.
“그날 형이 저를 밀어 올렸어요. 물이 너무 빨리 차올라서 저는 계단 위로 기어 나왔는데, 형은 다시 내려갔어요. 누가 더 남아 있는 줄 알았나 봐요.”
선재는 자신이 한동안 병원에 있었고, 보호자가 뒤늦게 역에 찾아갔을 때 분실물로 남은 붉은 우산을 건네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산은 집으로 가져갈 수가 없었다.
“계속 이상했어요. 비만 오면 현관 쪽으로 굴러갔거든요. 엄마가 무서워해서 다시 역에 맡겼어요. 이상하게도, 누군가한테 꼭 돌려줘야 하는 물건처럼 느껴졌어요.”
나연은 그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이제 그 우산이 왜 대여소로 돌아왔는지는, 적어도 절반쯤 이해할 수 있었다. 우산은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약속의 수신인을 찾아온 것이었다.
남은 절반은 어머니였다.
나연의 어머니는 준의 이야기가 나오면 늘 방 안 창문부터 닫았다. 비 소리를 오래 듣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그래서 나연은 새벽 네 시 반, 식탁 위에 조용히 두 잔의 보리차를 놓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붉은 우산을 꺼냈다.
어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그걸 아직도 들고 다니니.”
“준이 돌려보낸 거야.”
어머니는 화를 내지도, 믿지 않는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우산을 오래 바라봤다. 마치 오래전부터 돌아올 줄 알았지만, 실제로 돌아오는 순간만은 끝내 준비하지 못한 물건처럼.
나연은 9번 플랫폼 이야기를 했다. 보관실 장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산 속에서 준이 남긴 문장 하나를 조용히 꺼냈다.
“어머니에게 대신 전해 달래.”
어머니는 그제야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이가 매번 비 오는 날이면 나한테 새벽시장 가자고 했어. 내가 늘 피곤하다고 미뤘지. 장마 끝나고 가자, 다음 주에 가자, 비 그치면 가자… 그러다가 그날이 왔어.”
나연은 더 묻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미 말하면서도 어디쯤 아파하는지 스스로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다섯 시 직전, 두 사람은 함께 9번 플랫폼에 섰다. 역은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청소용 물차가 멀리서 지나가고, 첫차 안내 방송이 반쯤 잠긴 목소리로 흘렀다. 나연은 붉은 우산을 펼쳐 어머니 손에 건넸다.
그 순간 우산 천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실제 비는 거의 그쳐 가고 있었는데도, 우산 위에서는 장마의 한복판처럼 맑고 또렷한 물소리가 울렸다.
장면이 열렸다.
이번엔 나연도, 어머니도 동시에 본 것처럼 숨을 멈췄다. 준은 형광 조끼를 입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품 안에서 선재를 밀어 올린 직후였다. 계단 위 사람들에게 아이를 넘겨준 그는 잠깐 주머니를 더듬었다. 그리고 젖은 손으로 붉은 우산 손잡이를 꽉 쥐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문장은 이상할 만큼 선명했다.
`엄마, 이번엔 꼭 새벽에 가요. 누나랑 같이.`
어머니가 우산 손잡이를 붙든 손에 힘을 주었다. 나연은 그 손등이 얼마나 차가운지 처음 알았다. 장면 속 준은 마지막으로 아주 짧게 웃었다. 늘 뭔가를 미루면서도 금세 다시 돌아올 사람처럼, 평범하고도 어리게. 그리고 화면은 빗물처럼 천천히 흩어졌다.
우산 끝에서 마지막 물방울 하나가 플랫폼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머니는 오래 울지 않았다. 대신 한참 동안 플랫폼 선 너머 어두운 선로를 바라보더니, 아주 낮게 말했다.
“알았어. 이제는 갈게.”
그 말이 누구에게 향한 것인지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첫차가 들어오며 바람이 일었다. 나연은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고 붉은 우산을 다시 받으려 했다. 그런데 손끝에 잡히는 감각이 이상했다. 방금까지 분명히 젖은 천과 금속살이 있었는데, 손안에는 차가운 물기만 남아 있었다.
붉은 우산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플랫폼 벤치 옆 바닥에는 낡은 이름표만 하나 남아 있었다. `준`이라는 글씨가 이번에는 흐려지지 않고 또렷했다. 나연은 그것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사라진 게 허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처음으로 정확한 반납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비가 완전히 멎은 뒤, 나연은 대여소 셔터를 다시 올렸다. 우산 걸이 맨 안쪽, 늘 비어 있으면서도 가장 눈에 띄던 자리가 있었다. 예전엔 그 자리를 볼 때마다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세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의 빈자리는 조금 달랐다.
누군가 끝내 약속을 놓친 자리가 아니라, 너무 늦게라도 제자리로 돌아간 약속의 자리처럼 보였다.
나연은 의자에 앉아 젖은 앞치마를 천천히 벗었다. 골목 끝에는 비 대신 엷은 햇빛이 번지고 있었다. 대여소 문 앞 작은 철판 간판이 처음으로 덜 쓸쓸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