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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분량2026년 4월 12일

비행기 모드의 연인 · 1

비행기 모드의 연인, 마지막 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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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유출 사건 이후로 서울의 밤은 예전보다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쉽게 음성 비서를 켜 두고 잠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의 메시지를 클라우드에 맡기는 서비스는 애도보다 거래에 가깝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서하는 자정이 넘으면 가게의 셔터를 반쯤 내리고, 창문에 붙은 차단 필름이 제대로 내려왔는지부터 확인했다. 그가 맡는 일은 고장 난 스피커를 고치는 쪽이 아니었다. 그는 죽은 사람의 마지막 말투와 숨 고르기를 담은 로컬 추모 기기를 깨워, 남겨진 사람이 한 번은 제대로 작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복원사였다.

가게 이름은 `에어플레인 모드`였다. 우스갯소리처럼 붙인 이름이었지만 손님들은 오히려 그 점을 믿었다. 이곳에서는 모든 무선 신호를 끊고, 모든 동기화를 멈춘 뒤에야 기계가 켜졌다. 누군가의 죽음이 다시 광고 추천 문구로 팔려 나가지 않게 하려면 그 정도 고집은 필요했다.

서하는 마지막 체크리스트를 훑었다. 천장 모서리의 신호 차단등은 파랗게 죽어 있었고, 카운터 아래의 보조 전원은 배터리 모드로 내려가 있었다. 오늘 예약은 없었다. 평소 같으면 그대로 커피포트를 비우고 문을 잠갔을 것이다. 그런데 셔터를 더 내리려던 순간, 문 아래로 얇은 택배 상자가 밀려 들어왔다.

누가 놓고 간 건지 보려고 문을 열었을 때 골목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비도 오지 않는데 아스팔트가 젖은 것처럼 번들거렸고, 가로등 아래에는 오직 상자에 묶인 검은 봉인 끈만 남아 있었다. 서하는 몸을 숙여 상자를 집어 들었다. 발신인 칸은 비어 있었고, 수신인 자리에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오래전에 더는 듣지 않게 된 별칭이 적혀 있었다.

`서하에게. 아니, 하늘계단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에게.`

그 순간 그는 손끝을 놓칠 뻔했다. 그 별칭은 윤슬만 쓰던 말이었다. 대학 시절, 혜화역 4번 출구 안쪽의 좁은 계단을 둘만의 약속 장소처럼 부르며 장난처럼 만들어 낸 이름. 윤슬이 죽은 뒤, 그 말을 입에 올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서하는 상자를 카운터 위에 올려두고 한참 들여다봤다. 윤슬은 일 년 전 죽었다. 더 정확히는, 기억 유출 사건의 후폭풍으로 벌어진 압사 사고 속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공식 기록은 그렇게 끝났다. 사고 직후 수도 없이 쏟아진 가짜 추모 영상과 합성 음성들 때문에 서하는 장례식장보다 신고 창구를 더 오래 드나들어야 했다. 그래서 윤슬의 이름이 붙은 어떤 기계도 더는 남아 있을 리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한숨을 누르며 봉인 끈을 잘랐다. 안에는 손바닥 두 개를 겹친 정도 크기의 회색 기기가 들어 있었다. 옛 휴대용 라디오를 닮았지만 안테나는 없고, 측면에는 봉인된 데이터 슬롯이 하나 있었다. 기기 윗면의 작은 각인만이 낯익었다.

`LOCAL WAKE UNIT / PRIVATE GRIEF MODEL`

그리고 그 아래, 손으로 새긴 것처럼 거칠게 긁힌 한 줄.

`클라우드가 꺼진 뒤에만 열 것.`

서하는 아무 생각 없이 의자에 앉지 않았다. 먼저 가게 안의 마지막 유선 연결까지 전부 확인했다. 벽면 공유기 전원을 내리고, 백업 회선 케이블을 뽑고, 차단 스위치를 하나씩 올렸다. 그러자 조용한 가게 안에서 냉장고의 낮은 진동음만 남았다. 그는 기기를 중앙 테이블 위에 올리고 배터리 단자를 연결했다. 무선이 없는 밤에만 시작되는, 작은 의식 같은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저 검은 화면에 자신의 얼굴이 흐리게 비칠 뿐이었다. 그런데 서하가 기기를 뒤집어 하단 스위치를 밀자, 오래된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기 직전 같은 작은 떨림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짧은 백색 잡음이 한번 튀고, 곧 아주 낮은 숨소리가 스피커 틈에서 새어 나왔다.

“...신호 차단 확인.”

서하는 그대로 굳었다.

윤슬의 목소리였다.

기억 속에서 조금도 닳지 않은 속도였다. 문장을 급하게 밀지 않고, 단어와 단어 사이에 아주 얇은 숨을 하나씩 남기던 말투. 죽은 사람의 기록을 수없이 다뤄 온 그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직업적인 거리감이 전혀 남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 관절이 창백해질 만큼 테이블 모서리를 붙잡았다.

“재생을 원하면 왼쪽 버튼을 누르세요.”

그는 누르지 못했다. 유언은 늘 준비된 말로 시작했다. 미안하다거나, 사랑했다거나, 너무 늦었다거나. 그런데 기기는 몇 초 조용히 있다가, 준비된 안내문 대신 전혀 다른 문장을 꺼냈다.

“너 아직도 두 번째 계단은 피해 밟아?”

서하는 숨을 삼켰다.

혜화역 안쪽 계단. 윤슬은 계단을 오를 때마다 왼쪽 두 번째 칸을 일부러 건너뛰었다. 금이 가 있는 모서리를 밟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진심 반 농담 반으로 말했다. 어느 날부터는 서하도 따라서 그 칸을 피했다. 그 습관은 윤슬이 죽은 뒤 어느 순간 사라졌다. 정확히 언제 잊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겨우 열렸다.

“이건... 유언이 아니잖아.”

기기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좋아. 그럼 아직 늦진 않았네.”

짧은 정적 뒤로 서걱이는 노이즈가 지나갔다. 누군가 종이 위에 펜촉을 세게 밀던 소리 같았다. 서하는 그제야 화면 아래 희미하게 떠오른 파형을 봤다. 일반 추모 기기라면 감정 안정 패턴이 먼저 나와야 했다. 그런데 이건 달랐다. 파형이 말에 반응하는 대신 특정 구간마다 끊겨 있었다. 마치 문장 사이사이에서 의도적으로 잘려 나간 틈처럼.

“서하.”

이번엔 그의 이름을 또렷하게 불렀다.

“네가 나를 잃은 게 아니야.”

그의 등골을 차가운 것이 쓸고 내려갔다.

“누군가 네가 나를 기억하는 방식부터 잘라냈어.”

서하는 반사적으로 전원 버튼 쪽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끝은 닿지 못했다. 기기가 마지막으로 아주 낮게, 꼭 지금 이 순간에만 말할 수 있다는 듯 속삭였다.

“하늘계단, 두 번째 칸 아래. 오늘 밤 안에 확인해. 안 그러면 네가 잃어버린 건 나만이 아니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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