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끄는 걸 깜빡한 대마법사님 · 3화
3화. 구독자들이 봉인진을 외우기 시작했다
옷장 안에서 들린 두 번째 충격음은 첫 번째보다 더 컸다. 나무문이 안쪽에서 불쑥 밀려 나왔고, 문틈 사이로 자주색 안개가 한 줄기 새어 나왔다. 은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카메라 각도를 천장 쪽으로 꺾었다.
“잠시 기술 점검 들어가겠습니다.”
채팅창은 당연히 더 신났다.
— 기술 점검이 왜 보라색 연기인데
— 옷장 열렸어 열렸어
— 언니 이럴 때일수록 방송 끄면 안 됨
모로는 이미 바닥에 부적 세 장을 펼쳐 놓고 있었다. “상자 봉인이 풀린다. 오늘 지하 균열에서 잡아 온 잔향체야. 실체는 약한데 성질이 최악이야.”
“왜 하필 지금.”
“네가 후원 때문에 회복 주문을 썼잖아. 그 마력 파장이 상자까지 울린 거지.”
은하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세계를 구하는 직업은 늘 예상치 못한 야근을 포함하지만, 보통은 실시간 채팅 1만 3천 명 앞에서 하진 않는다.
옷장 문이 안쪽에서 활짝 열리더니, 주먹만 한 검은 구체 세 개가 통통 튀어나왔다. 매끈한 연기덩어리처럼 생긴 그것들은 허공에서 잠깐 멈추더니 곧바로 카메라 렌즈와 부엌 전등과 모로의 꼬리를 각각 목표로 삼았다.
“왼쪽!”
모로가 외치자 은하는 지팡이 대신 편의점 봉투를 휘둘렀다. 양파링 봉지가 첫 번째 구체에 맞고 터지면서 짭짤한 가루가 허공에 흩어졌다. 놀랍게도 잔향체 하나가 그 냄새에 방향을 잃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채팅창은 이 상황을 여전히 ‘역대급 연출’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 양파링이 약점이냐
— 메모함 양파링 보스전
— 왼쪽 위 원형 문양 뭐임 예뻐
은하는 순간적으로 채팅을 다시 봤다. 왼쪽 위 원형 문양. 모로가 바닥에 펼친 부적 세 장이 화면 구석에 잡혀 있었고, 시청자 몇 명이 거기 그려진 봉인진 일부를 확대해 보고 있었다.
“모로.”
“왜.”
“저 사람들, 문양을 보고 있어.”
모로도 화면을 흘끗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지금 그걸 분석할 시간이냐?”
하지만 은하는 이미 계산하고 있었다. 잔향체는 강하지 않지만 방향 감각이 엉망이라, 단순한 봉인보다 유도형 배열이 잘 먹힌다. 문제는 손이 둘뿐이라는 점이었는데, 시청자들이 화면 속 문양을 따라 적고 있다면, 적어도 자기 머릿속 정리를 소리 내며 해도 위화감이 줄어든다.
그녀는 일부러 카메라가 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하게 말했다.
“좋아요, 여러분. 연출 설명 들어갑니다. 원형 도안은 삼등분, 안쪽은 역삼각형, 마지막 점은 네 시 방향이에요.”
채팅창이 실시간으로 복창하기 시작했다.
— 삼등분
— 역삼각형
— 네 시 방향 점
— 이거 ARG 맞지
은하는 그 반응을 틈타 실제 봉인진을 공중에 그렸다. 설명을 따라 적는 사람들 덕분인지 집중이 이상하게 더 잘 됐다. 말이 리듬을 만들고, 리듬이 주문의 박자를 잡았다.
첫 번째 잔향체가 금빛 선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두 번째는 모로가 캔 참치 뚜껑으로 유인해 현관 쪽에 몰아넣었다.
세 번째는 가장 성가셨다. 그 녀석은 방송 장비 주변을 맴돌며 카메라 초점을 흐리고, 채팅창을 순간적으로 깨진 문자로 덮었다. 몇 초 동안 화면엔 '####'와 알 수 없는 기호가 미친 듯이 지나갔다.
— 와 진짜 해킹당한 줄
— 이것도 연출이면 천재다
— 모로 살려
“모로는 안 죽어.”
은하는 거의 자동반사처럼 대꾸하며 마지막 구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잔향체는 오히려 그녀의 손목을 스치고 천장으로 튀었다. 불정령이 구석에서 화들짝 놀라 불꽃을 튀기자, 집 안 전등이 동시에 한 번 꺼졌다 다시 켜졌다.
그 찰나, 채팅창 최상단에 누군가가 남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 언니 그냥 방송 계속해요, 이상한 거 나오면 우리가 먼저 캡처할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도, 그 문장이 이상하게 힘이 됐다. 시청자들은 진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겁 없이 이 방송에 남아 있었다. 누구 하나 “도망쳐요”라고 하지 않고, 다들 이걸 한밤중의 우당탕 라이브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은하는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요. 그럼 마지막 연출 갑니다.”
그녀는 손가락을 튕겨 천장 전등을 한 줄만 남기고 모두 껐다. 어둠 속에서 자주색 잔향체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동시에 바닥의 부적, 모로의 참치 뚜껑, 불정령의 불꽃, 그리고 휴대폰 화면이 네 방향에서 각각 빛을 냈다.
은하는 그 네 점을 한 번에 잇는 봉인식을 완성했다.
잔향체는 짧게 비명을 지르듯 찌그러지더니, 마지막으로 양파링 냄새를 맡은 것처럼 허공에서 한 번 흔들리고 사라졌다.
집 안이 조용해졌다.
채팅은 2초 정도 멈췄다가, 곧 엄청난 속도로 다시 흘렀다.
— 미쳤다
— 이 방송 뭐냐고 진짜
— 연출팀 월급 더 줘라
— 다음 방송 예약
은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모로는 바닥에 털썩 앉더니 앞발로 얼굴을 문질렀다.
“이제라도 끄자.”
은하는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동시 시청자는 어느새 2만을 넘어 있었고, 구독 버튼 알림이 쉼 없이 떴다. 아까까지만 해도 실수였다. 지금은 조금 달랐다.
“아니.”
모로가 귀를 쫑긋 세웠다.
“대신 규칙을 더 늘리자.”
은하는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여러분,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조금 더 정돈된 심야 생활 판타지 방송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실명, 좌표, 실전 봉인술 요청은 받지 않습니다. 대신… 야식 추천은 받겠습니다.”
채팅이 환호처럼 올라왔다.
— 인정
— 다음엔 모로 브이로그
— 불정령도 고정 출연
— 야식은 떡볶이
은하는 그제야 종료 버튼을 눌렀다.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지자 귀가 멍할 정도였다. 화면이 꺼진 뒤에도 휴대폰은 한동안 알림으로 떨렸다.
모로가 한숨을 쉬었다. “네 인생이 이제 좀 시끄러워지겠군.”
은하는 엎질러진 양파링 가루와 찢어진 부적을 천천히 바라봤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삶은 너무 조용한 쪽이었다. 세상은 구했지만, 그 사실을 아무도 몰랐고, 알아도 안 되는 쪽이 더 안전했다.
하지만 오늘 본 채팅창은 이상했다. 사람들은 진실을 끝까지 의심하면서도, 그 의심 덕분에 오히려 그녀가 버틸 수 있는 가면을 만들어 줬다.
“시끄러워도 괜찮아.”
은하가 작게 말했다.
“적어도 이번엔, 내가 끌 생각은 없으니까.”
그날 오전, 은하의 채널 이름은 새로 바뀌었다.
심야 생활 판타지 : 방송 끄는 걸 자주 잊는 사람
구독자 수는 해가 뜨기 전에 3만을 넘겼고, 고정 댓글에는 누군가 이런 문장을 남겨 두었다.
— 이 방송의 장르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계속 보게 되는 건 확실함
은하는 그 댓글에 처음으로 하트를 눌렀다. 세상을 구한 뒤에도 스케줄표는 늘 비어 있었는데, 이제는 처음으로 다음 방송 시간을 고민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