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독자가 남긴 하이라이트 · 1화
1화. 사후 밑줄 보관소
사람이 죽으면 전자책도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문서는 사후 밑줄 보관소의 야간 정리원이었다. 보관소는 시립도서관 지하 4층에 있었고, 살아 있는 독자는 출입할 수 없었다. 유족이 신청하면 고인의 전자책 계정에서 밑줄, 메모, 마지막 읽은 위치를 모아 작은 추모 파일로 묶어 주는 곳이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멈춘 문장을 알고 싶어 했고, 누군가는 평생 말이 없던 부모가 어떤 대목에서 눈물을 흘렸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문서의 일은 감정적이어 보였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행정이었다. 너무 사적인 메모는 가리고, 저작권 문제로 긴 문단은 줄이고, 욕설과 카드 번호와 가족에게 남긴 원망을 분리했다. 가장 어려운 건 밑줄이 아니라 빈칸이었다. 누군가 마지막까지 아무 문장에도 밑줄을 긋지 않았다면, 유족은 꼭 물었다.
"그 사람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았나요?"
문서는 그럴 때마다 정해진 답을 했다. "밑줄이 없는 것도 읽은 방식입니다."
그날 새벽 세 시, 폐기 예정 서버에서 알림이 왔다. 반납 기한이 지난 독서 로그 하나가 자동 삭제 전에 사람 검토로 넘어온 것이다. 계정 주인은 이름이 지워져 있었고, 사망 처리 번호도 없었다. 대신 마지막 읽은 책 제목만 남아 있었다.
『하이라이트가 돌아오는 밤』
문서는 제목을 검색했다. 출간 기록이 없었다. ISBN도 없고, 플랫폼 등록도 없고, 작가 페이지도 없었다. 그런데 로그 안에는 밑줄이 417개나 있었다. 첫 번째 밑줄은 이렇게 시작했다.
내가 죽은 뒤에도 문서는 야간 근무를 그만두지 못했다.
문서는 손을 멈췄다. 자기 이름은 흔한 편이 아니었다. 직업까지 같으면 우연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그는 장난 계정인지 확인하려고 로그 원본을 열었다. 독서 기기 정보, 접속 시간, 손가락 압력, 페이지 체류 시간까지 모두 정상으로 찍혀 있었다. 마지막 접속 시각은 미래였다.
2026년 5월 8일 00:17.
문서는 모니터 오른쪽 아래 날짜를 보았다. 2026년 5월 7일. 아직 하루가 남아 있었다.
두 번째 밑줄이 자동으로 펼쳐졌다.
그녀는 처음엔 자신이 독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밑줄은 읽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에게 남겨지는 구조였다.
보관소의 형광등이 한 번 깜박였다. 문서는 서버실 유리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피곤한 얼굴, 목에 걸린 출입증,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의 흐릿한 표정. 그때 책의 여백에 새 메모가 생겼다. 키보드를 치는 사람은 없었다.
첫 번째 사망 예정자는 독자가 아니다. 정리원이다.
문서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서버실 안쪽, 폐기 예정 장비 사이에서 전원 불빛 하나가 새벽 별처럼 깜박이고 있었다. 고인의 독서 기록을 담는 검은 저장 장치였다. 원래는 녹색이어야 할 상태등이 붉게 변해 있었다.
그 저장 장치 위에 아주 작은 종이책이 놓여 있었다. 표지는 없었다. 첫 장에는 문서의 필체로 보이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내 밑줄을 다 읽지 마. 읽는 순간 네가 그 문장까지 따라오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