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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 분량2026년 4월 23일

꼴찌 분대는 새벽에 사라진다 · 1

1화. 꼴찌 분대는 돌아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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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첫날부터 총을 쥐여 주겠다고 했을 때, 한기준은 그 말을 훈련소식 농담쯤으로 들었다.

삭발을 막 끝낸 신병 서른두 명은 아직 군복도 몸에 덜 맞았다. 이름표는 새것이었고, 발에는 길들지 않은 전투화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생활관 배정을 받기도 전에 중대장은 그들을 훈련장으로 끌고 갔다. 언덕 아래에는 폐허처럼 꾸며 놓은 시가전 모형장과 목적지 표지판, 진흙이 묻은 깃발 기둥까지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제31 전환전력교육대에 온 걸 환영한다.”

정민석 소령은 연단 위에서 말했다.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

“여긴 시간 낭비를 싫어한다. 너희는 오늘 바로 적성을 판정받는다. 세 가지 시험이다. 전술 시뮬레이션, 목표 지점 돌파, 깃발 탈환. 분대 단위 점수 합산. 순위는 즉시 공개.”

누군가 뒤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예능이냐.”

기준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레이저 태그처럼 총을 쏘고, 장애물을 넘어가고, 깃발을 뽑아 오는 게임. 몸이 힘들 수는 있어도 어차피 첫날 훈련은 겁만 주는 용도일 거라고 여겼다. 다들 반쯤 얼어 있으면서도 반쯤 웃고 있었다.

기준이 속한 5분대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분대장 역할을 맡은 박용현은 목소리만 컸고, 후방 지원에 들어간 조상필은 고글을 제대로 쓰지도 못한 채 쏘다녔다. 첫 시험인 전술 시뮬레이션에서 기준은 교실 건물 모형 안으로 먼저 진입했지만, 뒤에서 따라와야 할 인원 둘이 엉뚱한 골목으로 빠지는 바람에 옆구리가 열렸다. 방어 점수가 순식간에 깎였다.

두 번째 시험은 더 나빴다. 제한 시간 안에 봉화 언덕까지 모의 탄약 상자를 들고 올라가는 과제였다. 진흙 경사로에서 최병우가 발목을 접질렀고, 용현은 상자를 버리고 뛰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기준은 병우를 놓고 갈 수 없었다. 그는 상자의 한쪽 손잡이를 어깨에 걸친 채 병우의 팔까지 감아 끌고 올라갔다. 덕분에 5분대는 제시간보다 2분 늦게 도착했다. 소령은 기록판만 보고 있었지, 누가 누구를 부축했는지는 보지 않았다.

마지막 깃발 탈환은 거의 확인사살이었다. 다른 분대가 똑같이 깃발을 향해 달려들 때, 5분대는 출발 신호부터 한 박자 늦었다. 기준이 깃대를 붙잡았을 땐 이미 상대 분대 두 명이 몸으로 길을 막고 있었다. 레이저 판정음이 헬멧 안에서 연달아 울렸고, 전광판엔 잔혹할 만큼 단순한 숫자가 떴다.

5분대, 최하위.

훈련이 끝난 뒤 모두 헬멧을 벗고 숨을 고르며 웃었다. 누군가는 “저녁 구보 두 배면 끝이겠지”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꼴찌 분대는 오늘 화장실 청소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기준도 억지로라도 따라 웃었다. 이렇게까지 정색할 이유가 없었다. 첫날 신병들에게 성적표를 매기는 건 겁주기일 뿐이라고, 그렇게 믿는 편이 훨씬 쉬웠다.

저녁 점호 직후, 생활관 스피커에서 이름이 불렸다.

“5분대 전원. 19시 30분. 정리동으로 이동.”

정리동이라는 이름을 기준은 그날 처음 들었다. 그런데 다른 훈련병들은 의미를 안다는 듯 잠깐 조용해졌다. 그 정적이 농담보다 훨씬 무서웠다. 생활관 끝 침상에서 누군가 짧게 십자 성호를 그었다.

“야, 저거 뭐냐?”
기준이 묻자 옆 침상 신병이 눈을 피했다.
“나도 잘 몰라. 그냥… 전통이라던데.”

전통이라는 말이 기준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5분대는 밤 점호 줄과는 다른 방향으로 끌려갔다. 정리동은 본관 뒤편 언덕 아래에 붙은 낮은 건물이었다. 창문은 길쭉했지만 불투명 유리로 가려져 있었고, 입구 앞에는 군종 장교와 헌병 두 명이 서 있었다. 이상한 건 5분대만 온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른 분대 인원들까지 조용히 뒤를 따라왔다. 어떤 애는 기도문을 외웠고, 어떤 애는 고개를 숙인 채 마지막 인사라도 하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기준은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여기까지 다들 따라오는 걸 보니, 역시 연출일 거라고. 공포심 조성 교육, 혹은 전통적인 벌칙 행사.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면 설명되지 않는 게 없었다.

그러나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냄새가 달랐다. 표백제와 녹, 오래 젖었다가 마른 밧줄 냄새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벽면에는 이름표를 떼어 낸 사물함이 줄지어 있었고, 맨 끝 복도에서 낮은 기계음이 반복적으로 울렸다.

“마지막 종교 의식 희망자는 지금 말한다.”

헌병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도 누군가 웃을 거라고 기준은 기대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조상필이 그대로 주저앉아 토했고, 박용현은 “이건 규정 위반입니다”라고 중얼거리다가 목소리가 꺼졌다. 그제야 기준은 이 모든 게 진짜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늦게 이해한 만큼 공포는 더 급하게 몸을 파고들었다.

복도는 좁았고, 따라온 다른 분대 인원들까지 뒤엉키면서 줄이 흐트러졌다. 누가 울고, 누가 기도하고, 누가 마지막 악수를 청하는 와중에 기준은 본능적으로 옆 줄로 몸을 틀었다. 고개를 숙이고 앞사람 등을 따라 걸으면, 헌병조차 순간적으로 얼굴을 구분하지 못했다. 기준은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행렬의 끝부분으로 밀려났다. 누군가 어깨를 붙잡았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붙잡힌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되자 그는 곧장 비상구 쪽 어둠으로 몸을 숨겼다.

건물 바깥으로 빠져나온 뒤에도 도망치지 못했다. 다리가 풀린 탓도 있었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평생 믿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준은 언덕 아래 배수로를 돌아 길쭉한 창문 하나가 보이는 곳까지 기어갔다. 유리는 불투명했지만, 안쪽 사람 윤곽은 어렴풋이 보였다. 일렬로 선 실루엣들. 목 부근에서 위로 이어지는 검은 선. 누군가 울부짖는 입 모양만 희미하게 번졌다.

잠시 뒤, 짧은 준비 신호음이 울렸다.

그리고 여러 개의 발판이 한꺼번에 접히는 소리가 났다.

쿵.

그 뒤엔 사람의 목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비명이 차례로 새어 나왔다. 짧은 소리, 길게 찢기는 소리, 공기를 삼키다가 끊기는 소리. 기준은 창 아래에 주저앉은 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눈물부터 떨어졌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이걸 만든 사람들이 아직도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믿고 있을 것 같아서 더 끔찍했다.

건물 안쪽 소리가 조금씩 사그라들 무렵, 멀리서 취침 사이렌이 울렸다. 훈련소 전체에는 평소와 똑같은 밤이 내려앉고 있었다.

기준은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철조망 옆 배수로를 넘어, 주말마다 보급 트럭이 드나드는 보안문 밑을 기어 나가, 군화 바닥이 찢어질 때까지 뛰었다. 뒤에서 누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한기준은 공식적으로 탈영병이 되었다.

하지만 기준이 마지막으로 본 건 탈영병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오래 남았다. 불투명한 창문 너머의 목선들, 그리고 시스템이 사람을 훈련시키는 대신 정리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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