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분대는 새벽에 사라진다 · 3화
3화. 새벽 방송
정리동 이동까지 남은 시간은 다섯 시간 남짓이었다.
기준은 그 짧은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썼다. 먼저 야간 위생 점검 틈을 타 시윤과 같은 7분대 인원 셋을 따로 불러냈다. 믿을 만한 사람부터 골라야 했다. 장비 손질을 유난히 꼼꼼하게 하던 의무병 훈련병 윤소담, 전산병 지원 경력이 있어 전광판 통신 구조를 빨리 읽어 낸 문진호, 그리고 아무 말 없이도 끝까지 남아 줄 얼굴을 한 시윤. 기준은 그들 앞에 군번줄과 출력해 온 문서 사본을 내려놓았다.
“꼴찌 분대는 전출되는 게 아니다. 정리동에서 없어진다.”
소담이 제일 먼저 믿었다. 믿고 싶어서가 아니라, 2년 전 같은 교육대에서 ‘전출’ 처리됐다는 친언니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리동에서 나는 냄새를 세 번 맡았을 때부터, 이름만 바꾼 같은 밤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짐작했다는 것이다. 진호는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기준이 보여 준 재배치 효율 문서를 보자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전광판 네트워크가 본청 감사 회선과 완전히 분리된 줄 알았는데, 비상 훈련 방송용 백업 채널 하나가 살아 있다고 말했다. 평소엔 막혀 있지만, 대규모 안전사고로 플래그가 바뀌면 외부 송출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사고를 만들어야 열려.”
진호가 말했다.
“아니.” 기준이 고개를 저었다. “사고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숨긴 사고를 현재형으로 바꾸면 돼.”
새벽 네 시, 7분대는 마지막 기회라는 이름의 추가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정민석 소령은 평소처럼 무심한 얼굴로 설명했다.
“최종 통합 과제다. 중앙 지휘동 옥상 깃발을 회수해 본부 패널에 꽂아라. 성공 분대는 재평가 대상이 된다.”
거짓말이었다. 기준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과제는 꼴찌 분대를 처형장 근처로 자연스럽게 이동시키기 위한 절차일 뿐이었다. 깃발을 회수하든 말든 05:10 명령서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엔 기준 쪽도 거짓말을 준비해 왔다.
모의 교전이 시작되자 기준은 일부러 적중음을 두 번 허용하고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감시 드론이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린 순간, 소담이 의료 판정기를 기준의 팔찌에 갖다 대 임시 후송 상태 코드를 심었다. 덕분에 기준은 사망 처리된 훈련병처럼 메인 추적 화면에서 흐릿해졌다. 그는 그 틈을 타 진호와 함께 지휘동 측면 정비 계단으로 붙었다.
시윤과 나머지 둘은 정면으로 계속 뛰었다. 일부러 잡히지 않을 정도로만 싸우며 다른 분대 시선을 끌었다. 훈련장 전체의 전광판에는 여전히 순위 그래프와 남은 시간만 떠 있었고, 아무도 그 숫자 뒤에 숨은 시간표를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정비 계단 끝 통신실 문은 자물쇠 대신 생체 판독기로 잠겨 있었다. 기준은 오래전에 외워 버린 절차를 손끝으로 되짚었다. 복귀자 팔찌 권한으로는 열리지 않았지만, 정리동 야간 청소 로테이션을 부여받은 적이 있는 소담의 위생 점검 토큰을 겹쳐 읽히자 기계가 한 번 망설이듯 떨었다.
찰칵.
통신실 안쪽 벽에는 세 개의 회선이 나란히 떠 있었다.
훈련장 내부 방송.
정리동 관리 채널.
국방본부 비상 훈련 송출선.
진호가 손을 떨며 말했다. “마지막 선은 사고 플래그 없이는 안 열려.”
기준은 주머니에서 오래된 군번줄 하나를 꺼냈다. 박용현의 이름이 적힌 금속판은 이제 손땀이 닳아 글자가 흐려져 있었다.
“그럼 플래그를 만들지.”
그는 정리동 관리 채널 아카이브 폴더를 열었다. 그 안에는 숫자만 바뀐 처형 기록이 수십 개 들어 있었다. 영상은 아니고, 실루엣 기록과 생체 신호, 발판 이탈 시점, 사망 판정 로그만 남은 간이 파일들이었다. 시스템은 사람을 끝까지 숫자로 보존하고 있었다. 기준은 그 파일 열다섯 개를 한꺼번에 선택해 내부 방송 버퍼로 던졌다. 동시에 진호는 폐기 계획 문서, 비용 절감 계획, 정민석 서명이 찍힌 승인 파일을 비상 송출선 큐에 밀어 넣었다.
“이제?”
진호가 물었다.
기준은 손가락을 정리동 채널의 현재 대기 명령서 위에 올렸다.
[Squad 7 / 05:10 / execute]
execute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기준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그 명령서를 외부 송출 플래그가 읽는 위치로 복사하고, 분류값을 ‘대형 인명 사고’로 바꿨다.
바깥 스피커가 터지듯 울렸다.
처음엔 순위 그래프가 사라졌다. 다음 순간 훈련장 중앙 전광판 전체에 정리동 실루엣 기록이 떠올랐다. 얼굴도 이름도 없는 반투명 목선들, 발판 이탈 시점 로그, 심박수 급락 그래프. 이어서 폐기 비율 문서와 서명 파일이 한 장씩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현재 명령서가 모든 화면 가운데에 박혔다.
[Squad 7 / 05:10 / execute]
훈련장 전체가 멈췄다.
먼저 총을 내린 건 다른 분대 훈련병들이었다. 교관들이 소리를 지르며 화면을 끄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중앙 방송이 열리는 순간 각 생활관, 식당, 행정동, 심지어 정문 대기 구역 모니터까지 같은 송출을 받고 있었다. 부모 면회실 외벽 스크린에도 실루엣 기록이 뜨기 시작했다. 진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본청에서도 받는다. 이제 로그가 밖으로 나갔어.”
옥상 쪽에서 경고 사이렌이 울리고, 정민석 소령의 목소리가 훈련장에 퍼졌다.
“전원 장비를 내려놓고 원위치한다! 지금 송출되는 자료는 적성 실험 보안 규정에 따른 왜곡 영상이다. 탈영병 한기준이 시스템을 조작했다.”
기준은 통신실 문을 열고 직접 밖으로 나갔다. 이제 숨을 이유가 없었다.
아래 운동장 한가운데서 시윤이 고개를 들었다. 형을 발견한 순간 얼굴이 굳었지만, 이번엔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중앙 깃대를 향해 걸어 나와 마이크가 달린 방송 단말을 뽑아 들었다.
“왜곡이면 이것부터 설명하십시오.”
목소리는 떨렸지만 끊기지 않았다.
시윤은 목적지 돌파 때 자신이 부축했던 훈련병을 앞으로 끌어 세웠다. 아직 발목 보호대도 제대로 묶이지 않은 애였다.
“이 애도 점수표에선 손실입니까?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부축했다는 이유만으로, 저희를 정리동으로 보내는 게 훈련입니까.”
운동장에 모인 훈련병들 사이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파도처럼 번졌다. 그건 모두가 이미 마음속으로 품고 있었지만, 누구도 말할 수 없었던 문장이었다.
정민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헌병들에게 통신실 확보를 명령했다. 계단 쪽에서 군홧발 소리가 몰려왔고, 가장 먼저 들이닥친 헌병 하나가 개머리판으로 진호의 어깨를 내려쳤다. 진호가 콘솔 위로 쓰러지며 마지막 송출 큐가 흔들렸다. 소담이 바로 달려들어 그의 몸을 끌어안고 단말을 지켰고, 기준은 난간을 박차고 내려가 헌병 둘을 계단 아래로 밀어냈다. 그 짧은 몸싸움 사이, 정문 쪽에서 사이렌이 하나 더 겹쳤다. 이번엔 부대 내부 경보음이 아니라 외부 군사경찰 차량 소리였다. 진호가 끝까지 붙들고 있던 비상 송출선이 정말로 본청 감사 회선과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혼란은 순식간에 퍼졌다. 어떤 교관은 정민석 명령을 따르려 했고, 어떤 교관은 그대로 멈춰 섰다. 어떤 훈련병은 울기 시작했고, 어떤 훈련병은 바닥에 총을 내려놓고 정리동 방향을 향해 욕설을 뱉었다. 소담은 탈구된 진호의 어깨를 급히 고정한 채 7분대 인원들을 뒤로 모으며 혹시 모를 실탄 대응에 대비했다. 그러나 총구는 끝내 위로 들리지 못했다. 이미 모두가 봐 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더 이상 비밀 훈련이 아니라, 생중계된 범죄였다.
해가 뜰 무렵, 정리동 문은 외부 수사관들 앞에서 처음으로 강제로 열렸다.
기준은 그 장면을 멀리서 지켜봤다. 몇 년 전 자신이 불투명한 창밖에서 혼자 봤던 장소를, 이제는 수십 명이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감춰 두면 권력이 되던 건물도, 햇빛 아래로 끌려 나오자 그저 증거 창고처럼 보였다.
그날 오후, 한기준은 다시 수갑을 찼다. 탈영과 군사 시설 무단 침입, 기밀 송출. 죄목만 보면 중하게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손목이 묶여도 전처럼 막막하지 않았다. 시윤이 살아 있었고, 7분대도 살아 있었다. 무엇보다 정리동의 문이 더 이상 조용히 닫히지 못하게 됐다.
헌병 차량에 오르기 직전, 시윤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얼굴로 다가왔다.
“형.”
기준이 돌아봤다.
“다음엔 도망가지 마.”
그 말에 기준은 아주 잠깐 숨이 막혔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도망친 게 아니라 돌아온 거니까.”
차량 문이 닫히기 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운동장을 바라봤다. 새벽 방송 이후 꺼졌던 전광판은 비워진 상태로 다시 켜져 있었다. 순위표 대신 단 두 줄만 남아 있었다.
[제31 전환전력교육대 운영 중지]
[전 인원 평가 재검토]
완벽한 결말은 아니었다.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누군가 성적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새벽에 사라지는 시스템을 정상이라고 부를 수는 없게 되었다.
기준은 창문 너머로 번지는 아침빛을 보며 처음으로 확신했다. 살아남은 사람의 일은 도망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돌아와, 그 문이 어떻게 사람을 집어삼켰는지 모두가 보게 만드는 데까지 가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