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되지 않는 위치공유 · 1화
삭제되지 않는 위치공유, 장례 뒤에 켜진 점
장례를 마친 집은 이상할 만큼 가벼웠다.
향 냄새는 아직 현관문 틈과 커튼 자락에 남아 있었는데, 사람의 기척은 하루 전보다 더 완전히 빠져나가 있었다. 사흘 동안 집 안을 채우던 목소리들, `언니가 더 힘내야지` 같은 아무 쓸모 없는 위로들, 국그릇과 종이컵이 부딪히던 소음이 한순간에 다 사라지고 나니 거실은 본래보다도 넓어 보였다.
지안은 거실 바닥에 앉아 수빈의 물건을 하나씩 종이상자에 넣고 있었다. 학교 때 쓰던 필통, 반쯤 닳은 립밤, 교통카드가 꽂힌 카드지갑. 버려도 되는 것과 버리면 안 될 것의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흐릿했다. 손이 닿는 모든 것에 수빈의 체온이 아니라, 체온이 빠져나간 뒤의 납작한 감촉만 남아 있었다.
휴대폰이 울린 건 그때였다.
짧고 또렷한 알림음 하나.
지안은 무심코 화면을 켰다가 그대로 굳었다.
`수빈님이 위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장례 후에 밀려온 각종 행정 문자가 또 잘못 온 줄 알았다. 통신사에서 계정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늦게 날아온 알림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알림을 눌러 지도를 열자, 지안의 숨이 목구멍에서 걸렸다.
지도 위에서 초록색 점 하나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수빈.
이름 아래 찍힌 점은 동문구역 쪽이었다. 몇 년 전부터 철거 이야기가 나와 밤이면 사람 발길이 끊기는 재개발 구역. 낮에도 빈 상가 셔터가 줄줄이 내려가 있고, 밤에는 가로등이 군데군데 죽어 있는 동네.
수빈은 살아 있을 때 그쪽으로 절대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둘이 지름길로 한 번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수빈은 그날 이후로 동문구역 이야기가 나오기만 해도 표정이 굳었다. 별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았다. 그냥 `거긴 싫어` 하고 입을 다물었다. 지안은 그게 단순한 기분 문제인 줄 알았다.
지금 지도의 점은, 그런 동네 안쪽 골목을 정확히 따라가고 있었다.
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화면만 내려다봤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차갑게 식었다. 혹시 누가 수빈의 휴대폰을 갖고 있는 걸까. 도난품을 켠 건가. 아니면 장례 전후로 가족 계정 정리가 꼬여서 예전 기록이 늦게 반영된 건가.
하지만 지도에 뜬 시간은 `지금`이었다.
지금, 오후 열한 시 십이 분.
움직이는 속도도 이상했다. 자동차도 아니고, 뛴다고 보기에도 애매했다. 비가 막 그친 밤거리를 누군가 천천히 걷고 있을 때 나오는 속도였다. 가로로 한 번 꺾이고, 골목 안으로 조금 들어갔다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지안은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다가 다시 움켜쥐었다. 심장이 갑자기 빨라지자 귀 안쪽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것도 아니야.`
입 밖으로 꺼내 보니 더 거짓말 같았다.
그 순간 수빈의 휴대폰이 떠올랐다.
장례식장 영안실 앞 복도. 어른들이 서류를 정리하고, 장례지도사가 남은 절차를 설명하던 틈에, 지안은 수빈의 잠금이 풀린 휴대폰을 잠깐 들여다봤었다. 습관처럼 메시지를 먼저 확인하려 했는데, 메모 앱이 열린 상태였다.
거기엔 문장 하나가 덜 써진 채 남아 있었다.
`49일 안에 한 번만 보낼게.`
그 뒤는 비어 있었다.
그때는 수빈이 죽기 전에 무슨 헛소리를 적어둔 건지 몰랐다. 약에 취한 상태에서 남긴 문장인가 싶었고, 누군가에게 보내려다 만 메시지로도 보였다. 지안은 그 메모를 오래 보지 못했다. 장례지도사가 휴대폰을 챙겨 달라고 했고, 그 뒤론 그 문장도 다른 일들에 밀려 기억 뒤편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지금, 지도 위에 뜬 점을 보고 있으니 그 문장이 칼끝처럼 다시 떠올랐다.
49일 안에 한 번만.
수빈은 죽은 지 사흘째였다.
지안은 통신사 고객센터 앱을 켰다가 닫았다. 경찰에 전화할까 싶다가 손을 멈췄다. 뭐라고 설명할 건데. 죽은 동생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뜬다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보다 더 끔찍한 건, 지안 자신도 그 말을 믿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지도 위 점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골목을 빠져나와 동문고가 쪽으로 붙었다. 오래된 고가도로 아래엔 예전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다. 지금은 철거가 덜 된 채 방치돼 있다는 얘기만 들었다.
지안은 휴대폰 화면을 확대했다. 손끝이 미끄러졌다.
`동문고가 아래 공중전화 부스`
지도 하단의 희미한 장소 이름이 보였다.
그때, 부엌 쪽에서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집 안이 갑자기 남의 집처럼 느껴졌다. 수빈의 방 문은 반쯤 열린 채였고, 문틈 사이로 침대 위에 벗어둔 회색 후드가 보였다. 지안은 그 후드를 한참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무시하면 끝날지도 몰랐다.
휴대폰을 꺼두고 내일까지 자면, 통신사 오류였다는 식의 문자가 하나 더 올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훨씬 편했다. 장례가 끝난 뒤 사람들은 다들 `이제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 일상이라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그런데 지안은 알고 있었다.
만약 오늘 밤 이걸 무시하면, 자신은 평생 이 알림을 떠올릴 거라는 걸.
수빈의 마지막 메모.
죽은 동생의 위치공유.
살아 있을 때 그렇게 싫어하던 동문구역.
그 셋이 한꺼번에 겹쳐졌는데도 집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지안은 옷걸이에서 검은 코트를 집어 들었다. 지갑과 보조배터리, 이어폰을 가방에 넣고 현관에 섰다가 다시 돌아와 수빈의 방 문을 닫았다. 문손잡이를 잡은 손바닥이 축축했다.
`나 금방 올게.`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스스로도 모르면서 중얼거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지도 위 점은 느리게 움직였다. 한 층 한 층 내려가는 숫자보다, 화면 위 작은 점이 꺾이고 멈추는 방식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누군가가 일부러 기다려 주는 것 같았다.
밖은 밤공기가 눅눅했다. 저녁 무렵 지나간 비가 보도블록 사이에 아직 얇게 고여 있었다. 편의점 불빛과 오피스텔 로비 조명이 물웅덩이에 번져 있었다. 지안은 택시를 잡으려다가 그만뒀다. 차 안에 혼자 앉으면 겁이 날 것 같았다. 대신 버스 정류장까지 걸으면서 계속 지도를 확인했다.
점은 아직 동문구역 안에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재개발 구역 입구에 다다르자 도시는 갑자기 다른 질감으로 바뀌었다. 밝은 프랜차이즈 간판이 끊기고, 오래된 타일벽 건물과 녹슨 가림막이 이어졌다. 철거 안내 현수막이 바람에 절반쯤 찢겨 나부꼈고, 닫힌 셔터 앞에는 빗물이 검게 고여 있었다.
지안은 걸음을 늦췄다.
멀리서 보면 분명히 아는 도시인데, 안쪽으로 몇 걸음만 들어오면 말이 통하지 않는 구역처럼 느껴졌다. 수빈이 왜 이 동네를 싫어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이상한 냄새가 났다. 젖은 시멘트 냄새, 오래된 전선 냄새, 사람 없는 골목의 눅눅한 공기.
지도 위 점이 다시 멈췄다.
공중전화 부스 앞.
지안은 고가도로 아래에 남은 콘크리트 기둥을 돌아갔다. 불 꺼진 상가 유리창에 자기 모습이 비쳤다. 창백한 얼굴, 장례 때부터 바꾸지 못한 검은 옷, 화면 빛에만 의지해 걷는 사람의 어색한 걸음.
그리고 진짜로,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다.
투명 아크릴은 군데군데 금이 가 있었고, 문은 절반쯤 열린 채 매달려 있었다. 안쪽 바닥엔 빗물이 들어와 얼룩이 졌다. 이미 철거됐어야 할 물건이 이상하게도 거기만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지도 속 점은 부스 한가운데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지안은 한동안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고가도로를 지나는 차 소리마저 멀게 느껴졌다.
`이상하면 돌아가자.`
그 기준이 뭔지도 모른 채 스스로에게 말했다.
부스 안으로 한 발 들어서자 휴대폰 화면이 짧게 흔들렸다. 신호가 약해지는 것처럼 파형이 깨졌다가 다시 붙었다. 그리고 벽에 매달린 수화기에서, 기계음 섞인 안내음이 먼저 흘러나왔다.
삐익.
이후엔 정적.
지안은 숨을 참고 수화기를 들었다.
손잡이는 생각보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냥 오래된 플라스틱의 감촉이었다. 귀에 가져다 댄 순간, 전자음이 한 번 더 튀었다.
그리고 수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지안은 손에서 수화기를 놓칠 뻔했다.
녹음된 목소리였다. 살아 있는 사람처럼 이어지지 않고, 아주 짧은 침묵과 함께 잘려 있었다. 그런데도 틀림없이 수빈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을 고르며 몇 번이나 들었던, 휴대폰 속 동영상보다 더 또렷한 목소리.
`지금은 나를 찾지 말고.`
지안의 눈앞이 잠깐 흐려졌다.
`내가 남긴 곳을 먼저 찾아.`
그 뒤로는 아무 말도 없었다. 다시 삐익, 하는 짧은 음이 들리고선 통화가 끊긴 것처럼 정적이 내려앉았다.
지안은 수화기를 든 채 서 있었다. 금이 간 아크릴문 사이로 밤바람이 들어와 젖은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무릎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은 더 선명해졌다.
수빈이 자신을 여기로 부른 게 맞았다.
유령이든, 예약 송신이든, 설명할 수 없는 통신 오류든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수빈이 죽기 전에 무언가를 남겼고, 그걸 지안이 이제야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안은 수화기를 천천히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화면 속 위치 점은 사라져 있었다. 대신 알림 기록 맨 아래에 짧은 문장 하나가 새로 남아 있었다.
`다음 공유까지 남은 시간: 45일 2시간`
지안은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사흘이 아니라 사십오 일.
수빈이 말한 49일은 정말로 작동하고 있었다.
고가도로 아래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회색 콘크리트 밑면과, 거기에 박힌 오래된 형광등만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안은 처음으로 장례가 끝난 뒤 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기분이 들었다.
수빈의 죽음은 끝난 사건이 아니었다.
아직 찾아야 할 장소가 남아 있었다.
지안은 코트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 부스 바깥으로 나왔다. 동문구역의 골목은 여전히 비어 있었지만, 조금 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가 아니라, 누군가 분명히 자신을 여기까지 이끌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수빈아.`
이름을 한 번 입 밖으로 꺼내자 차가운 공기 속으로 금방 흩어졌다.
지안은 다시 지도를 켰다. 점은 사라졌지만, 공중전화 부스 위치는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다음에는 어디로 이어질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 모른 척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