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되지 않는 위치공유 · 2화
삭제되지 않는 위치공유, 보관함 속의 명단
첫차가 들어오기 전 역은 밤과 아침이 겹쳐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안은 동문고가 아래 공중전화 부스에서 나온 뒤 거의 뛰다시피 걸어 역까지 왔다. 하늘은 아직 어두웠지만, 플랫폼 전광판은 이미 첫차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례를 치른 후 밤을 새운 건 처음이 아니었는데, 이번 새벽은 전혀 다른 종류의 피로로 흐릿했다. 졸린 게 아니라 몸이 계속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었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찾은 건 수빈의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지안이 수화기를 다시 걸려고 손을 움직이는 순간, 손등이 동전 반환구 철판에 스쳤다. 덜 닫힌 틈 안쪽에서 종이가 걸려 나왔다. 구겨진 영수증 조각과 녹슨 작은 열쇠 하나. 그땐 정신이 없어 주머니에 욱여넣기만 했는데, 역 대합실 구석 벤치에 앉아 펼쳐 보니 영수증은 보관함 사용 내역이었다.
`동문역 보관함 B-18`
사용 시간은 수빈이 죽기 전날 밤 열한 시 이십사 분.
지안은 영수증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수빈은 정말로 무언가를 단계적으로 남기고 있었다. 부스를 먼저 가게 하고, 그다음 역 보관함으로 부른다. 장례가 끝난 뒤 언니가 혼자 움직일 시간까지 계산한 것처럼.
첫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대합실로 조금씩 들어왔다. 밤새 일하고 돌아가는 사람들, 운동복 차림의 노인, 이어폰을 꽂은 대학생. 그 평범한 풍경 한가운데서 지안만 다른 시간대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B-18은 지하 통로 끝, 오래된 코인락커 줄 가장 안쪽에 있었다. 번호표 스티커가 반쯤 벗겨져 있었고, 표면엔 누군가 열쇠로 긁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안은 열쇠를 꽂아 돌렸다. 금속이 마찰하는 딱딱한 소리가 통로에 작게 울렸다.
문이 열리자 안에는 검은 천가방 하나가 들어 있었다.
지안은 한동안 손을 뻗지 못했다. 이 안에 무엇이 있든, 수빈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직접 감춰 둔 물건이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무서웠다.
가방 안엔 예상보다 평범한 것들이 먼저 나왔다. 오래된 보조폰, 충전 케이블, 동문구역 일대가 표시된 종이 지도, 방수 파일 하나. 그리고 접힌 메모지.
`세림빌라 301 옥상 온실`
수빈의 글씨였다. 빠르게 적느라 끝이 약간 올라간, 지안이 알아볼 수밖에 없는 글씨.
지안은 방수 파일을 열었다. 안쪽에는 출력된 명단과 스크린샷이 뒤섞여 있었다. 맨 위 장 제목은 `같이숨 관리자 권한`이었다.
같이숨.
지안은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여성 1인 가구와 노인 보호자를 위한 안심 위치공유 앱. 언론에서도 한동안 착한 기술 사례처럼 다뤘다. 수빈도 예전에 한 번 그 앱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치매 초기에 길을 잃을까 봐 설치할까 고민 중이라고. 지안은 그때 일이 많다는 핑계로 제대로 대꾸하지 않았다.
넘겨본 첫 장에는 관리자 아이디와 접근 권한 목록이 있었다. 일반 사용자의 실시간 위치, 이탈 알림, 즐겨찾는 이동 경로, 심지어 일정 기간 축적된 생활 패턴 요약까지 열람할 수 있었다. 안전을 위한 기능처럼 포장돼 있었지만, 누가 악용하면 사람 한 명의 삶을 거의 전부 들여다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두 번째 장에는 캡처 화면이 있었다.
`5동 204 아직 퇴근 안 함`
`301 오늘 병원 들렀다 바로 귀가`
`그 여자 새벽 두 시쯤 편의점 감`
이상하게 문장이 짧고 건조했다. 그래서 더 소름이 끼쳤다.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움직이는 표식처럼 다루는 말투. 지안은 화면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이건 안전 앱 운영 대화가 아니라 매물 정보처럼, 사냥감 목록처럼 쓰이고 있었다.
수빈은 이걸 본 거였다.
가방 맨 아래엔 작은 수첩도 있었다. 수첩 첫 장엔 이름 셋이 적혀 있었다.
`은서 / 5동 204 / 숨음`
`김정애 / 301 / 야간배회`
`수빈 / 확인 중`
지안은 페이지를 넘겼다. 짧은 메모들이 이어졌다.
`은서는 전남친 피해 숨는 중. 위치 유출되면 끝.`
`김정애 할머니는 재개발 동의서 때문에 쫓김. 아들이 아니라 브로커가 먼저 도착함.`
`같이숨 관리자 중 한 명이 동문구역 현장사무소와 연결.`
페이지 끝에는 세게 눌러 쓴 문장이 남아 있었다.
`언니는 이거 보면 무조건 믿을 사람 하나부터 정해. 혼자 들고 있으면 안 돼.`
지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수빈이 동문구역을 무서워한 이유가 이제야 모양을 얻기 시작했다. 그냥 싫은 동네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골목, 도망친 사람들의 발자국을 되파는 동네였던 거다.
보조폰 전원을 켜자 배터리가 간신히 살아났다. 화면엔 잠금이 없었다. 배경화면은 엄마 생일 때 셋이 찍은 사진이었다. 지안은 심장이 한번 덜컥 내려앉는 걸 느꼈다. 엄마는 이미 2년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사진 속 수빈은 그날처럼 웃고 있었다.
메시지함은 비어 있었고, 대신 녹음 파일과 메모 앱이 남아 있었다. 메모에는 날짜별로 짧은 기록이 이어졌다.
`7/4 김정애 할머니 실종 신고 전에 브로커 두 명 먼저 옴`
`7/9 은서 위치 유출. 같이숨 내부 확인 필요`
`7/11 언니한테 말하면 당장 뛰어들 것 같아서 못 말함`
지안은 마지막 줄 앞에서 눈을 감았다. 화가 났다. 왜 말하지 않았냐고 따지고 싶었다. 왜 항상 혼자 감당하려 했냐고, 왜 언니를 빼놓고 죽기 직전까지 이런 걸 들고 있었냐고.
그런데 화보다 먼저 밀려온 건 다른 감정이었다.
수빈은 지안을 보호하려 했다.
말하면 뛰어들 사람이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거다.
보조폰의 녹음 파일 중 하나를 눌렀다. 거친 숨소리와 바람 소리, 발자국이 먼저 들렸다. 수빈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같이숨은 엄마 찾으려고 깐 건데, 여긴 사람 찾는 데만 쓰는 게 아니었어.`
잠깐 정적.
`누가 어디에 혼자 있는지, 언제 약해지는지, 다 팔리고 있어.`
파일은 거기서 끝났다.
지안은 멍하니 손을 내려놓았다. 엄마가 길을 잃을까 봐 깔려던 앱. 가족을 잃지 않으려고 붙잡은 장치가, 어떤 사람들에겐 가장 약한 순간을 골라내는 도구가 돼 있었다.
그 순간, 옆 통로 유리창에 누군가 지나가는 그림자가 비쳤다.
지안은 본능적으로 화면을 껐다.
역 직원인지, 청소 용역인지 분간되지 않는 사람 하나가 천천히 락커 쪽을 지나갔다. 별일 아닌 걸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한 번, 아주 짧게 B-18 쪽을 보고 갔다. 그것만으로 지안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지안은 가방을 닫고 통로를 빠져나왔다. 사람들이 많은 개찰구 앞쪽으로 나왔는데도 심장이 가라앉지 않았다. 혹시 이미 늦은 건 아닐까. 수빈이 남긴 것들을 여는 순간 누군가에게 알림이 가는 구조면 어떡하지.
역 바깥 벤치에 앉아 자료를 다시 정리하던 중, 보조폰이 스스로 진동했다.
지안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전원을 켠 뒤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화면에 지도가 열리며 점 하나가 떠올랐다. 이번엔 현재 위치가 아니라 저장된 마지막 이동기록 같았다. 초록 점은 동문역에서 조금 떨어진 낡은 빌라 단지에 멈춰 있었다.
`세림빌라 301`
메모지에 적힌 장소와 똑같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지안의 본폰이 울렸다.
발신번호 표시 제한은 아니었다. 평범한 휴대폰 번호였다. 더 소름 끼친 건 그 평범함이었다.
문자 메시지는 한 줄뿐이었다.
`그 위치 아직 따라가고 있네요? 멈추면 장례로 끝날 일입니다.`
지안은 숨을 들이마신 채 화면을 봤다. 장례로 끝날 일.
저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수빈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고, 지안이 지금 따라가는 동선까지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경찰. 신고. 기자. 변호사. 여러 단어가 동시에 머릿속에 떴다가 부딪혔다. 누군가를 믿어야 한다는 수빈의 메모도 떠올랐다.
그런데 그 모든 판단보다 먼저 온 건 아주 단순한 확신이었다.
세림빌라 301에 가야 한다.
수빈이 최종적으로 숨겨 둔 것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아마, 수빈이 왜 위치공유를 죽은 뒤까지 남겨야 했는지도.
지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깥엔 새벽빛이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지만, 몸 안쪽은 여전히 밤에 붙잡혀 있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있으면 덜 무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수빈이 혼자 버티던 시간의 모양이.
지안은 보조폰과 명단 파일을 가방 깊숙이 넣었다. 그 위에 코트 단추를 채우며 다시 문자 화면을 켰다.
보낸 사람은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미 자신이 보고 있다는 걸 확인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했다.
지안은 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다. 대신 문자 내용을 캡처해 보조폰 쪽으로 옮겼다. 이제부터는 하나라도 흘리면 안 될 것 같았다.
`혼자 들고 있으면 안 돼.`
수빈의 메모가 자꾸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지안은 플랫폼 쪽으로 발을 옮기다가 멈췄다. 바로 세림빌라로 갈지, 먼저 믿을 사람을 만들지, 둘 중 무엇이 맞는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만 시간은 확실히 수빈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편도 아니었다.
동문역 출구 위 전광판에 새벽 시각이 떴다.
오전 5시 14분.
수빈이 죽은 뒤에도 남겨 둔 위치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따라가는 지안의 안전은, 이제부터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