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되지 않는 위치공유 · 3화
삭제되지 않는 위치공유, 마지막 초록 점
세림빌라 301은 빌라라기보다 거의 비어 가는 껍질에 가까웠다.
지안이 도착했을 땐 이미 아침 여섯 시를 조금 넘긴 뒤였지만, 건물 안쪽은 밤보다 더 적막했다. 출입문 유리는 금이 가 있었고, 계단실 전등은 삼 층에서 한 번, 옥상으로 올라가는 좁은 철문 앞에서 또 한 번 깜빡거렸다. 사람 사는 냄새 대신 축축한 먼지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301 옥상 온실`
수빈의 메모가 아니었다면, 지안은 이 낡은 건물 꼭대기에 아직 온실 같은 게 남아 있으리라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철문을 밀자 눅눅한 흙냄새가 확 끼쳐 왔다. 온실이라고 부르기엔 초라했다. 투명 비닐은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고, 화분 몇 개는 이미 말라 죽은 줄기만 남긴 채 쓰러져 있었다. 그래도 안쪽 한 구석엔 누군가 최근까지 손댄 흔적이 있었다. 다른 곳보다 덜 쌓인 먼지, 깔끔하게 치워진 물통, 바닥 위 작은 철제 수납함.
지안은 한동안 그 앞에 서 있기만 했다.
2화 내내 자신을 밀어온 건 분노와 공포였다. 그런데 막상 마지막 장소 앞에 서니, 이상하게 그 둘보다 먼저 피로가 밀려왔다. 수빈이 죽은 뒤 사흘. 장례, 유품 정리, 공중전화 부스, 보관함, 명단, 협박 문자. 그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감정이 몸을 지나갔다. 온실 안의 축축한 공기까지 모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철제 수납함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안에는 휴대용 녹음기 하나, 검은 USB처럼 보이는 외장메모리, 절반쯤 충전된 보조배터리, 그리고 접힌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종이에는 전화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은서`
끝이었다. 성도, 설명도 없었다. 수빈은 언니가 이 이름 하나로 충분히 알아들을 거라고 믿은 것처럼.
지안은 우선 녹음기를 들었다. 액정엔 파일 하나만 남아 있었다.
`47D-LAST`
손끝이 떨리는 걸 느끼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처음엔 숨소리만 들렸다. 거칠고 얕은 숨.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멀리 차 브레이크 끼익거리는 소리. 수빈은 뛰고 있거나, 막 멈춘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이거 듣고 있다는 건... 내가 제일 무서워하던 쪽으로도 결국 갔다는 뜻이겠지.`
지안은 눈을 감았다.
수빈의 목소리는 1화 공중전화 부스에서 들은 자동 음성과 달랐다. 그땐 짧고 준비된 메시지였다면, 지금 이 녹음은 숨이 흔들리고 목소리 끝이 떨렸다. 살아 있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라는 사실이 그대로 전해졌다.
`미안해. 나 이번엔 진짜 너한테 미루는 거 맞아.`
숨소리.
`처음엔 엄마 때문에 시작했어. 엄마 길 잃을까 봐, 같이숨이 진짜 안전한 줄 알고. 그런데 그 앱 관리자 화면을 보게 됐고, 그 뒤엔 그만둘 수가 없었어. 은서도, 정애 할머니도, 여기 사는 여자들 전부 자기 위치를 지키려고 그 앱 깐 건데... 그게 다 팔리고 있었어.`
지안의 손이 녹음기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나는 증거만 넘기고 빠질 수 있을 줄 알았어. 근데 이미 내 위치도 그 사람들 손 안에 있었어. 그래서 한 군데에 안 남기고 나눠 숨겼어. 공중전화, 보관함, 옥상. 언니는 끝까지 따라올 사람이라서. 언니밖에 없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지안은 화를 낼 힘도 잃었다. 수빈은 끝까지 언니를 믿고 있었고, 동시에 끝까지 언니를 위험에서 밀어내고 싶어 했다. 그 모순된 마음이 목소리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가 돌아가면 좋겠지. 나도 알아. 근데 그건 안 되잖아. 그러니까 언니, 내 위치를 계속 따라가지 마. 여기까지 오면 충분해. 은서한테 먼저 연락해. 자료는 혼자 들고 있지 말고, 무조건 두 군데 이상 넘겨. 그리고...`
목소리가 잠깐 멎었다. 뒤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발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섞였다.
`내가 죽은 게 그냥 사고처럼 보이더라도, 그 말 믿지 마.`
지안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녹음기 안 수빈은 마지막까지 시간을 쪼개듯 말했다.
`언니가 날 찾아오게 하려고 위치공유 꺼지지 않게 한 거야. 엄마 때 썼던 가족 권한 그대로 남겨 두면, 49일 안에 한 번은 언니한테 신호 갈 거라 해서. 나 그거 믿었어. 무서워서가 아니라, 언니가 살아 있는 사람들 편에 서 줄 거라 믿어서.`
그리고 아주 낮게, 거의 숨처럼 마지막 말이 이어졌다.
`이번엔 나 말고, 남은 사람들 위치를 지켜 줘.`
녹음은 거기서 끝났다.
지안은 한동안 손을 내리지 못했다. 온실 비닐 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마른 잎을 긁는 소리가 났다. 먼 곳에서 아침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도 들렸다. 세상은 평소처럼 움직이고 있는데, 자신만 그 한 문장 앞에 묶여 있는 느낌이었다.
`내 위치를 계속 따라가지 마.`
수빈은 죽은 뒤에도 언니를 앞으로 밀고 있었다.
지안은 눈가를 손등으로 한 번 훔쳤다. 울음이 터질 것 같다가도 이상하게 눈물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대신 가슴 안쪽이 단단하게 조여 왔다. 슬픔보다 먼저 방향이 생기고 있었다.
외장메모리를 확인했다. 안에는 압축 파일 두 개와 동영상 세 개가 들어 있었다. 하나는 `같이숨` 관리자 패널을 촬영한 화면 녹화였고, 다른 하나는 동문구역 현장사무소 안쪽 회의 장면을 몰래 찍은 영상이었다. 이름표가 선명하진 않았지만, 2화 자료 속 관리자 명단과 맞춰 보면 몇 명은 특정 가능했다. 마지막 동영상은 밤거리 골목 끝에서 누군가 수빈을 향해 다가오는 장면까지 흔들리다 끊겼다.
완전한 범죄 입증 자료라기보다,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느낄 만큼 충분한 조각들이었다.
문제는 이걸 누구에게 어떻게 넘기느냐였다.
지안은 종이에 적힌 `은서` 번호를 들여다봤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도 망설였다. 혹시 이미 바뀐 번호면? 누군가 이 번호를 미끼로 남긴 거면? 하지만 수빈은 마지막 녹음에서 먼저 은서를 언급했다.
세 번 신호음이 울린 뒤, 조심스러운 여자 목소리가 받았다.
`...여보세요.`
지안은 순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짧은 침묵 끝에 상대가 먼저 숨을 삼켰다.
`혹시 수빈 언니예요?`
지안은 입 안이 마르는 걸 느꼈다.
`은서 씨예요?`
상대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아주 낮은 숨소리와 함께, 문 잠그는 소리 같은 게 건너왔다.
`수빈이... 혹시 진짜 언니한테 갔어요?`
그 말 하나로 충분했다. 은서는 적어도 수빈과 같은 편에 있었다.
지안은 짧게 상황을 설명했다. 공중전화 부스, 보관함, 온실, 녹음기. 모든 걸 자세히 늘어놓진 않았지만 은서는 금방 알아들었다. 오히려 필요한 말만 골라 했다.
`자료는 그 자리에서 바로 클라우드랑 메일 두 군데로 올리세요. 그리고 언론보다 먼저 여성법률지원 쪽 변호사한테 보내야 해요. 수빈이 남긴 연락처 뒤에 붙어 있던 별표 보셨어요? 그거 변호사 구분이에요.`
지안은 다시 종이를 펼쳤다. 정말로 숫자 끝에 연필로 찍힌 작은 별표가 있었다. 너무 작아서 아까는 얼룩인 줄 알았다.
`그리고...` 은서가 말을 멈췄다. `수빈 죽은 날, 그냥 미끄러져서 난 사고 아니었어요. 그날 누가 쫓고 있었어요. 저도 봤어요. 겁나서 바로 못 나섰는데, 수빈이 언니한테만은 남길 거라고 했어요.`
지안은 온실 난간을 붙잡았다. 철제 난간이 손바닥을 차갑게 눌렀다.
이제는 더 이상 감으로 짐작하는 단계가 아니었다.
수빈은 쫓기고 있었고, 그 추적 속에서 죽었다. 적어도 사고라는 한마디로 끝낼 일은 아니었다.
지안은 통화를 끊지 않은 채 외장메모리를 휴대폰 어댑터에 꽂아 파일을 복사했다. 하나는 자신의 클라우드 드라이브, 하나는 은서가 불러 주는 메일 주소, 마지막 하나는 이름 옆 별표가 붙은 변호사 메일로 보냈다. 전송 막대가 천천히 차오르는 동안에도 손끝은 계속 떨렸다.
그때 본폰에 또 문자가 도착했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지안은 이번엔 그 문장을 오래 보지 않았다. 곧바로 캡처하고 은서에게 전달했다.
`이 번호도 같이 넘길게요.`
은서는 짧게 대답했다.
`이제 혼자 아니에요.`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지안을 붙들어 줬다.
온실 바깥으로 아침빛이 더 선명해졌다. 밤새 비에 젖어 있던 도시 표면이 서서히 색을 되찾고 있었다. 유리창 틈으로 들어온 빛이 녹음기 액정에 부딪혀 작게 번졌다.
지안은 마지막으로 보조폰을 켰다. 화면에는 아직도 초록 점 하나가 남아 있었다. 현재 위치가 아니라, 수빈이 설계해 둔 마지막 공유 권한의 잔여 신호처럼.
`다음 공유까지 남은 시간` 문구는 사라졌고, 대신 단순한 선택지 두 개가 떠 있었다.
`공유 유지`
`공유 종료`
수빈이 정말로 여기까지 계산해 둔 건지, 아니면 시스템이 우연히 남긴 잔상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이제 결정은 지안 몫이었다.
죽은 동생의 위치를 더 오래 붙잡아 둘 수도 있었다. 며칠 더, 몇 시간 더, 마음이 버틸 때까지. 그렇게 하면 수빈이 아직 어딘가에서 자신을 이끄는 것 같은 착각을 조금 더 오래 품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수빈은 분명히 말했다.
`이번엔 나 말고, 남은 사람들 위치를 지켜 줘.`
지안은 엄지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여 `공유 종료`를 눌렀다.
확인 메시지가 한 번 떴다.
`위치공유를 종료하시겠습니까?`
지안은 망설이지 않았다.
`예`
초록 점이 사라졌다.
그 순간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 같았다. 물론 실제로는 아니었다. 빌라 아래 도로에선 택배차 문 닫는 소리가 났고, 멀리선 학교 방송 같은 게 희미하게 울렸다. 그런데 지안 안쪽에서만, 사흘 동안 단단하게 조여 있던 무언가가 겨우 끊어졌다.
끝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에 가까웠다.
이제 수빈을 따라가는 일은 끝났고, 수빈이 남긴 것들을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연결하는 일이 시작됐다. 은서, 김정애 할머니, 아직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 엄마를 지키려 깔았던 앱에 삶이 노출된 사람들.
지안은 녹음기와 외장메모리를 가방에 넣고 온실 문을 닫았다. 내려가는 계단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오래된 먼지를 비췄다. 밤새 자신을 붙잡고 있던 서늘함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 안에 처음으로 방향이 생겼다.
삼 층 계단참에 다다랐을 때, 지안은 휴대폰을 꺼내 은서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자료 다 보냈어요. 끝까지 같이 갑시다.`
답장은 금방 왔다.
`수빈도 그걸 원했을 거예요.`
지안은 잠시 멈춰 서서 화면을 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수빈의 이름을 읽으면서 더는 그 아이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수빈이 끝까지 놓지 못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죽은 사람의 위치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 자리가 비어 버린 건 아니었다. 그곳엔 이제 지안이 움직여야 할 오늘의 좌표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