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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Assisted
4분 분량2026년 4월 16일

회수되지 않는 음성메모 · 3

회수되지 않는 음성메모, 4시 10분의 파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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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새벽 두 시 반이 넘어서야 외투를 입었다.

미나가 병원 안내문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을 때, 어머니는 처음엔 그 종이를 끝까지 읽지도 않았다. 대신 오래된 습관처럼 텔레비전 볼륨부터 올리려 했다. 미나는 리모컨을 조용히 치웠다. 그다음 녹음기를 식탁 가운데에 두고, 12번 사물함에서 들은 소리 중 가장 짧은 파일만 재생했다.

`준오 왔니?`

한 문장뿐이었는데, 어머니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그 목소리는 분명 어머니 자신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둥글고 맑았다.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조차 가볍던 시절의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화면이 꺼진 뒤에야 낮게 물었다.

“이거… 어디서 났어.”

“준오가 남겼어.”

“그 애 이야기로 사람을 시험하지 마.”

미나는 그 말 앞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화가 난 게 아니라, 겁이 난 사람의 말투라는 걸 알아서였다. 그 역시 겁이 났다. 준오를 붙잡고 싶은 마음과, 붙잡을수록 더 빠르게 잃게 된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마음이 자꾸 충돌하고 있었다.

“엄마, 한 번만 같이 가 줘. 이거 들으라고 남긴 거야. 나 혼자 가면 안 된대.”

어머니는 한참 동안 창밖만 봤다. 새벽 비가 그친 뒤라 도로는 축축했고, 골목 가로등은 반쯤 졸고 있는 빛을 바닥에 흘리고 있었다. 마침내 어머니가 아주 천천히 외투를 챙겼다.

“이번 한 번만이야.”

동해전망대로 가는 첫 버스는 거의 비어 있었다. 창문에 기대 잠든 학생 하나, 장화를 신은 생선 상인 부부, 맨 뒷자리에서 졸고 있는 택배 기사. 버스 히터 바람은 건조했고, 오래된 커튼에는 바다 냄새와 디젤 냄새가 반쯤 섞여 있었다.

미나는 창가 쪽에 앉은 어머니 옆에서 녹음기를 두 손으로 감쌌다. 준오의 마지막 메모를 아직 다시 듣지 않았다. 듣는 순간 또 무엇이 사라질지 몰랐으니까. 이미 잃은 것도 충분히 컸다. 그는 이제 준오가 웃을 때 어깨가 먼저 움직였는지, 입꼬리가 먼저 올라갔는지 구별할 수 없었다. 웃음의 리듬도 사라졌고, 숨이 섞이는 지점도 비어 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슬픔은 더 날카로워지지 않았다. 대신 텅 빈 칸이 생겼다. 아픈데 모양이 없는 빈칸.

어머니가 창밖을 보며 물었다.

“네 오빠가 정말… 이런 걸 준비했을까.”

“나도 모르겠어. 근데 지금은 이거라도 따라가 봐야 할 것 같아.”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등 위 푸른 혈관이 히터 바람에 말라 보였다. 미나는 그 손을 한번 잡아 보려다 관뒀다. 너무 늦게 잡는 위로처럼 느껴질까 봐.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4시 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다는 아직 해를 받기 전이라 잉크처럼 어두웠다. 멀리 방파제 끝의 빨간 불만 느리게 깜빡였다. 새벽 공기는 차고 맑아서, 숨을 내쉴 때마다 작은 구름이 흩어졌다. 전망대 바닥에는 밤새 맺힌 이슬이 얇게 깔려 있었고, 난간 너머에서는 파도가 한 번 밀려왔다가 길게 빠져나갔다.

미나는 녹음기를 난간 위에 올려놓았다. 화면은 04:09에서 잠시 멈춘 듯 느리게 넘어갔다.

04:10.

아카이브 앱이 스스로 켜졌다.

`수동 확인 필요 / 최종 음성메모`

미나는 어머니를 한번 바라봤다. 어머니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다. 미나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

처음엔 바람 소리였다. 지금 이 전망대에서 부는 것과 거의 같은 방향, 거의 같은 높이의 바람. 그다음 파도 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준오의 목소리가 천천히,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됐다.

“잘 왔네.”

미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이번엔 잃는 순간까지도 똑바로 보고 싶었다.

“엄마, 미나야. 이걸 듣고 있으면 내가 너무 늦지는 않았다는 뜻이겠지.”

준오는 숨을 한번 골랐다. 예전 같으면 그 짧은 숨만으로도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저 바람결 같은 마디로만 들렸다.

“나를 붙잡으라고 남긴 거 아니야. 그랬으면 계속 내 목소리만 들리게 했을 거야.”

어머니의 손가락이 난간 위에서 살짝 굽었다.

“엄마가 점점 못 듣는 게 늘 무서웠어. 미나는 나중에 얼굴만 기억할까 봐 무서웠고. 그래서 그냥… 남겨 두고 싶었어. 집에 있던 소리들. 엄마가 컵 내려놓는 소리, 미나가 투덜거리던 소리, 내가 현관문 열고 들어가던 소리.”

메모 저편에서 작은 웃음 같은 숨이 스쳤다. 미나는 그걸 알아듣고 싶었지만, 끝내 잡히지 않았다. 대신 이번엔 이상하게 덜 무서웠다.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 덜 날카롭게 느껴졌다.

“사라지는 건 막을 수 없잖아. 그래도 오늘이 남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려고.”

바람이 한번 세게 불었다. 녹음기 스피커에 모래 알갱이 같은 잡음이 스쳤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할게. 이제는 옛날 것만 듣지 말고, 오늘 걸 하나 새로 남겨 줘. 엄마 목소리도, 미나 목소리도, 지금 파도 소리도. 내가 없어도 계속 이어지는 걸로.”

메모는 거기서 곧바로 끝나지 않았다. 아주 짧은 침묵 뒤에 마지막 문장이 이어졌다.

“그럼 이건 지워져도 괜찮아.”

파일이 멈췄다.

어머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미나는 녹음기 화면만 바라봤다. `삭제` 버튼은 뜨지 않았다. 대신 상단에 작은 문장이 떠 있었다.

`새 기록 대기 중`

마치 이 메모가 끝까지 삭제를 미뤄 온 이유가 바로 이 순간 때문이라는 듯했다.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애는 늘 쓸데없는 걸 너무 성실하게 챙겼지.”

목소리는 떨렸지만, 문장은 이상하게 정확했다. 미나는 그 소리를 놓치고 싶지 않아 녹음기 녹음 버튼을 눌렀다. 빨간 점이 켜졌다.

“엄마, 지금 말해 줘.”

어머니는 미나를 한번 봤다. 그 시선에는 오래 참은 사람 특유의 피로와, 너무 늦게 도착한 이해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바다 쪽을 향해 아주 천천히 말했다.

“준오야. 이제 알겠다. 네가 왜 그렇게 별것 아닌 소리를 모았는지.”

바로 그때, 수평선 아래서 해가 아주 얇게 떠올랐다. 푸른빛이 빠르게 밝아지며 난간과 바닥의 이슬에 번졌다. 파도 소리가 한층 또렷해졌다. 갈매기 하나가 전망대 위를 낮게 가르며 지나갔다.

미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어머니 곁에 섰다.

“엄마.”

어머니가 돌아봤다.

“응?”

그 한 음절이 새벽 공기 위에 또렷하게 얹혔다. 예전보다 조금 쉰 기색이 있었고, 끝음은 짧게 갈라졌지만 분명 지금의 어머니 목소리였다. 지나간 시간을 닮은 게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오늘의 목소리.

녹음기 화면에는 새 파일 시간이 차곡차곡 올라가고 있었다.

`REC_04_10_01`

그 순간 오래 붙어 있던 알림 하나가 조용히 사라졌다.

`수동 확인 필요 / 최종 음성메모`

미나는 본능적으로 재생 목록을 다시 열어 보았다. 준오의 마지막 파일은 흔적도 없이 지워져 있었다. 놀랍게도 허무하진 않았다. 울컥하는 빈자리 대신, 방금 저장된 새 파일의 빨간 점이 더 크게 보였다.

준오의 목소리를 이제 완벽하게 복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웃음의 리듬도, 숨의 높낮이도, 다 잃어버린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실이 더는 배신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잃은 만큼 남길 수 있는 것도 있다는 걸, 준오는 어쩌면 이것으로 가르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어머니가 미나의 어깨를 한번 가볍게 쥐었다.

“집에 가자.”

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녹음기 파일명 입력 칸에 천천히 손가락을 올렸다.

`엄마가 부른 이름`

저장.

화면 속 작은 파형이 고요하게 굳었다. 해는 조금 더 떠오르고 있었다. 전망대 난간은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파도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밀려와 같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달라진 것은 아주 작았다. 하지만 분명했다.

윤미나는 이제 사라진 사람의 목소리를 붙잡는 쪽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의 오늘을 기록하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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