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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분량2026년 4월 21일

죽은 탑의 패치노트 · 2

2화. 17층 유지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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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린의 잔향은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검끝을 낮추지 않았다. 그녀가 눈앞에 서 있는 동안에도 전투장은 아주 느린 호흡으로 흔들렸다. 벽면에 박힌 수정 포대가 한 번씩 푸르게 깜빡일 때마다, 얼어 있던 잔향들이 몇 초치 전투 동작을 되풀이했다. 누군가는 방패를 들어 올리고, 누군가는 이미 비어 있는 공중에 창을 던졌다. 그리고 모두가 다시 정지했다.

서언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세린. 나야.”

“지원 유닛 서언.” 세린의 잔향은 기계처럼, 그러나 완전히 기계적이지는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력 증폭 지연. 전열 붕괴 위험. 보급을 요청한다.”

그 말 끝에서 목소리가 미세하게 갈라졌다. 시스템 문장과 사람의 기억이 한 줄에서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서언은 발밑에 흩어진 파편 사이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으려 했지만, 신발 끝이 부러진 창대 하나를 밀자 공기가 얇게 진동했다. 즉시 상공에 또 다른 패치 문장이 열렸다.

[Interim maintenance procedure unlocked]
1. 관리 잔향의 시선 고정
2. 지원 계통 재연결
3. 수정되지 않은 전투 기록 확인

“탑이 지금 나한테 매뉴얼을 주는 건가.”

농담처럼 중얼거렸지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바닥 구석에 굴러 있던 자신의 옛 보급 상자를 발견했다. 반쯤 찌그러져 있었지만 자물쇠는 멀쩡했다. 패치노트를 가까이 대자 걸쇠가 스스로 풀렸다. 안에는 공략 직전까지 직접 조합했던 유리 앰플 세 개와 은빛 가루가 남아 있었다. 기록 보정용 수정염. 지원 연금술사가 전투 로그에 남은 잔여 마력을 읽을 때 쓰던 소모품이었다.

서언은 한숨처럼 숨을 들이켜며 은가루를 손등에 털었다. 손바닥이 싸늘하게 저렸다. 세린의 잔향은 여전히 그를 적도 아군도 아닌 무언가로 판단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 번만 더 믿어 줘.”

대답은 없었지만, 그는 세린의 시선이 완전히 비어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

수정염을 바닥 마법진 위에 뿌리자, 중단된 전투의 기록이 얇은 빛막처럼 펼쳐졌다. 마지막 공략의 수초가 소리 없이 되감겼다. 전열이 무너진 장면, 후방 마력이 한 번 꺼지는 장면, 그리고 서언이 모든 비난을 떠안게 만들었던 그 공백. 그는 이를 악물고 그 순간을 바라봤다.

그러나 기록은 기억과 달랐다.

서언의 증폭식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연결선이 매끈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시작됐다. 후방 회복 진영으로 연결되어야 할 제3 채널이 전투 도중 외부 권한으로 차단돼 있었다. 화면 한쪽에 낯익은 문장이 떠올랐다.

[Override approved by sponsor authority]

서언은 입술 안쪽을 씹었다. 스폰서 길드. 공략 성공만큼 탑의 심장핵 회수에 집착하던 후원자들. 세린이 마지막 순간 그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던 장면이 늦게 떠올랐다. 그때 그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버프가 끊긴 게 아니었네.”

세린의 잔향이 처음으로 그의 말을 따라왔다. “치유선이 먼저 꺼졌어.”

목소리가 더 사람답게 들렸다. 서언은 숨을 멈췄다. 잔향의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남아 있던 앰플 하나를 꺼내 세린의 검집 옆 균열에 천천히 붓고, 마지막 수정염을 허공의 로그 위에 털어 올렸다. 빛이 그녀의 어깨에서 발끝까지 한 번 매끈하게 흐르더니, 지연되던 그림자가 제자리를 찾았다.

세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피곤한 사람처럼 검을 바닥에 세웠다.

“난 네가 도망친 줄 알았어.”

서언은 웃지도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나도 내가 그랬다고 믿게 됐지.”

세린의 잔향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멈춘 전투장, 반복되는 잔향, 망가진 천장.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부터 계산하는 듯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공포보다 먼저 올라온 건 분노였다.

“그 자식들이 기록까지 건드렸네.”

“탑이 네 말을 들을까?”

“탑은 진실보다 절차를 먼저 믿어. 그러니까 절차를 되찾아야 해.”

그녀는 손가락으로 벽면 한쪽의 봉인 패널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희미하게 28층 관리실 표식이 떠 있었다.

“마지막 감사 로그가 저 위에 있어. 우리가 왜 죽었는지, 누가 채널을 잘랐는지, 전부 거기에 남았을 거야. 스폰서 권한으로 덮여서 아직 승인되지 않았을 뿐.”

패치노트가 다시 한 번 펼쳐졌다.

[Floor 17 interim fix applied]
- caretaker echo stabilized
- next unresolved issue moved to Floor 28

[Reward]
- 임시 유지보수 권한 부여

서언의 손등에 희미한 문양이 새겨졌다. 예전 레이드 표식과 닮았지만 조금 달랐다. 모험가 인장이 아니라, 정비 담당자의 승인 낙인처럼 보였다.

세린은 그 문양을 보고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봐. 탑도 이제 네 말을 들어야 한다고 인정한 거야.”

서언은 문양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일 년 동안 그는 살아남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죄인처럼 취급받았다. 그런데 죽은 탑은 지금 그에게 복구 권한을 주고 있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살아 있는 인간들보다 망가진 시스템이 먼저 진실을 구분하고 있었다.

17층 가장 안쪽, 이제야 열리는 작은 문 너머로 다음 승강기가 보였다. 표지판에는 18층이 아니라 28층으로 직행하는 유지보수 전용 경로가 떠 있었다.

세린의 잔향이 낮게 말했다. “이번엔 혼자 다 떠안지 마. 기록을 되찾아. 그리고 밖에 있는 놈들이 제일 싫어할 방식으로 공개해.”

서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잔향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다.

승강기 문이 열리자 안쪽 벽면에 짧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Rollback unavailable]
[Restore recommen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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